
선택 설계의 힘
[넛지]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시점을 완전히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21세기를 통틀어 최고의 경제학 서적으로 꼽힌다. 책의 타이틀이기도 하면서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넛지(nudge)'는 누군가의 강제적 명령이나 사회의 시스템적 규범이 없이도,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르지 않고서도 약간의 소프트한 개입만으로 옳바른 선택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선택 설계'개념을 알리며 전 세계인들을 열광시켰다. 한 사람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또한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형식에 따라 최종적인 선택의 결과값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에서 '넛지'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미국 행정부와 영국의 보수당 정권은 '넛지'를 정책을 설계하는데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테스크포스를 도입했다. 이후에도 세계 여러나라에서 넛지를 정부 정책이나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일들이 매우 일상화가 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다들 아는 것처럼 2008년 가을,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몰고 온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전세계 주식,부동산,채권같은 금융위기는 그전까지 확고하게 지지받아 온 자본주의 시장만능주의와 능력주의의 효용성에 의문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넛지=선택적 설계'가 그 대안이 되는 방법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낳기도 했다. 이처럼 [넛지]는 지난 13년 동안 사람들이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방법과 방식을 모조리 변화시켜버린 것은 물론,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을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냈다.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라
코로나가 터져 전 세계가 고통받던 2020년 여름, '넛지'의 두 저자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13년 만에 대대적으로 원고를 고치기로 마음먹는다. 시간이 지나 넛지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시대적 상황들이 변했고 13년 전 출간 할 때만 해도 꽤 유니크하다고 생각되었던 내용들이 2020년 이제는 너무나도 올드하고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버렸음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오래되고 낡은 것은 싹다 버리고 새롭고 앞으로 다가올 것들로 채워 넣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13년 전 초판 내용의 50% 이상을 다시 집필한 파이널 에디션은 완전히 새로운 '넛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를 거쳐 이제는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제도나 사례들도 모두 빠졌다. 대신에 우르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인간들의 독특한 특징을 통해 사회적 관념으로서의 넛지와 코로나 현상을 설명하고, 개인주의를 넘어 국가적인 이기주의로 인해 수 년 째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있는 기후 문제를 해쳐나갈 방법을 의제로 삼는 등 현시점에서 공감할 사례를 들어가며 더욱 확장성을 갖는 넛지의 세계로 보여준다.
진화한 선택 설계
넛지에서 공개되어 이제는 꽤나 유명해진 스키폴공항 남자화장실의 예를 생각해보자. 이 남자화장실 소변기의 정 가운데에는 파리 모양의 스티커가 떡하니 붙어 있다. 어느곳에도 오줌을 싸면서 파리를 맞추라는 말이 없었지만 오줌을 싸는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파리를 맞추려고 노력했고 그 덕에 소변기 밖으로 튀어나가는 오줌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다. 소변기에 파리 모양을 붙여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파리를 자신의 오줌으로 잡으려는 애쓰는 것처럼 인간들의 특정한 행동패턴을 유도하는 방법이 바로 '넛지'가 말하는 선택 설계다. 건물을 지을 때 설계도에 따라 건물의 구조와 형태가 완공되듯, 선택 설계를 어떻게 구조화 하는지에 따라 선택의 결과가 엄청나게 뒤바뀌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넛지의 새로운 시사점
13년전 넛지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와 비교하면 세상은 훨씬 더 다이내믹하고 복잡해졌다. 이렇게 복잡해진 세상을 감안해 두 명의 저자는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체계 속에서도 인간들이 스스로 일해 마련한 돈으로 보다 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확실한 인사이트를 가르치고 있다. 매달 납입하는 보험료는 적지만 자기 부담금이 상당한 보험 상품과 반대인 상품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까? 자신에게 합리적이고 유용한 보험이나 주택 담보대출을 바르게 선택하는 방법, 더 많은 돈을 저축하고 똑똑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법 등 인간이 사는 실생활에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넛지를 확일할 수 있다.
넛지는 속임수인가?
13년 동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며 효과가 입증된 '넛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넛지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선한 의도와 영향력이 있다 해도 넛지가 사람들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박탈시킨다거나, 또는 넛지가 사람을 컨트롤하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넛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넛지'의 저자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넛지의 근원적 '자유지상주의적 간섭주의'를 다시 한 번 정의하며 넛지를 반대하는 세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이 자유지상주의적 간섭주의 개념에 따르면 넛지는 결코 인간들에게 특정한 선택을 선동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들이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의도를 지닌 선택 설계가 누군가를 속이거나 또는 누군가의 행동을 조작하려는 것으로 본다면, TV같은 미디어에 나오는 무수히 많은 CF부터 제거해야 하지 않을까?
'넛지'의 저자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넛지가 세상의 별의 별 심오하고 심각한 이슈들을 쉽게쉽게 풀어낼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넛지가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만들어가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기에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인생은 물론이고 사회의 다양한 시스템과 그 사회를 유지하고 지켜내기 위한 방식에 더 많이 응용되기를 바란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이러한 자신들의 마음을 담아 '선한 넛지'라고 명명하며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함께 고민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댓글